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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모순',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이었다.

by _히로 2024. 1. 12.

 

1. 독서 후 기록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그 말은 이루기 아주 힘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주인공 안진진의 삶을 보며 저는 이 책이 로맨틱한 로맨스로 결말이 맺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온 그녀였기 때문에 그 로맨스가 로맨틱이 아니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았음에도, ‘나영규라는 남자보다는 김장우라는 사람을 그녀가 선택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결국 결혼식은 나영규와 했습니다. 나영규여야 했을까?라는?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책을 잘 읽었다면, ‘안진진의 삶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봤다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모의 죽음으로 그녀는 나영규를 선택했습니다. 이모가 지리멸렬하다며 놓아버린 그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를 꽤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이모가 지겹다며 스스로 끊어버린 그 삶을 왜 안진진은 선택했을까. 그리고 소설을 되짚어 봤습니다.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한 법이다. 너무 특별한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버린 내 아버지처럼 김장우도

 

안진진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엄마와 아빠를 통해서 특별한 사랑의 말로를 봤습니다. 가난이 있음에도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랑이 특별해서 결혼한 이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보면서 자랐고, ‘안진진이 그 특별한 사랑의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안진진은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이모의 삶을 동경했습니다. ‘이모의 삶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고 나영규와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이 남자와 살면 이모와 같이 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모의 행복이 이모에게는 불행이고, 엄마의 불행이 이모에게 행복으로 보였다면 삶이란 다 비슷한 것 같아서 안진진은 자신의 현재의 삶을 구제해 줄나영규를 선택했다. 그녀는 여태까지 아등바등, 하루하루를 절박하게 살아가는 것을 지겨울 정도로 해왔으니까.

 

책을 다 읽고, ‘안진진의 선택도 이해하고 나니 나도 참 모순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였으면 나영규를 선택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안진진김장우를 선택하길 바라는 것이 그랬습니다. 이 책이 왜 제목이 모순인지 알 수 있었고 충격이었던 포인트였습니다.

 

헤어진 다음날이라는 노래는 안진진의 말처럼 그녀의 노래가 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잘 견디었음으로. 하지만 김장우의 노래는 되었겠지. 책에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서술되지는 않았지만 꽤 슬퍼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김장우에게도 안진진은 특별한 사랑이었을 테니까요..

 

책을 다 읽고 나서 우연히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일 년’이라는’ 노래를 듣게 됐습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안진진에게 특별한 사랑은 감당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을지 몰라도, 추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은 으레 그렇게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2. 책 속에서 수집한 문장

 

“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무엇, 부딪쳐 깨지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강렬한 무엇. 그 ‘무엇’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힘이 사랑이라면,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손을 잡았다.”

- 결과적으로만 보면 김장우의 손을 잡았지만, ‘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다는 대목에서 이미 안진진나영규를 선택할 것이라는 게 보이는 대사. 사랑을 묘사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사랑이 아닌 현실을 선택할 그녀가 더 부각된다.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 마침내 김장우나영규사이에서 고민하던 안진진이 결단을 내리는 대목이다.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 낭만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김장우가 아니라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나영규를 택하겠다고 하는 이 대사가 지독히도 현실적이어서 모순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낭만적이어야 할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특별하지 않은 현실을 택하는 것이 모순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검증된, 많은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걸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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