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서 후 기록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그 말은 이루기 아주 힘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주인공 ‘안진진’의 삶을 보며 저는 이 책이 로맨틱한 로맨스로 결말이 맺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온 그녀였기 때문에 그 로맨스가 ‘로맨틱’이 아니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았음에도, ‘나영규’라는 남자보다는 ‘김장우’라는 사람을 그녀가 선택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결국 결혼식은 ‘나영규’와 했습니다. 왜 ‘나영규’여야 했을까?라는?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책을 잘 읽었다면, ‘안진진’의 삶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봤다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모의 죽음으로 그녀는 ‘나영규’를 선택했습니다. 이모가 지리멸렬하다며 놓아버린 그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를 꽤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이모가 지겹다며 스스로 끊어버린 그 삶을 왜 ‘안진진’은 선택했을까. 그리고 소설을 되짚어 봤습니다.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한 법이다. 너무 특별한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버린 내 아버지처럼 김장우도”
‘안진진’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엄마와 아빠를 통해서 ‘특별한 사랑’의 말로를 봤습니다. 가난이 있음에도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랑이 특별해서 결혼한 이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보면서 자랐고, ‘안진진’이 그 특별한 사랑의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안진진’은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이모’의 삶을 동경했습니다. ‘이모’의 삶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고 ‘나영규’와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이 남자와 살면 이모와 같이 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모의 행복이 이모에게는 불행이고, 엄마의 불행이 이모에게 행복으로 보였다면 삶이란 다 비슷한 것 같아서 ‘안진진’은 자신의 현재의 삶을 구제해 줄‘나영규’를 선택했다. 그녀는 여태까지 아등바등, 하루하루를 절박하게 살아가는 것을 지겨울 정도로 해왔으니까.
책을 다 읽고, ‘안진진’의 선택도 이해하고 나니 ‘나도 참 모순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였으면 ‘나영규’를 선택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안진진’은 ‘김장우’를 선택하길 바라는 것이 그랬습니다. 이 책이 왜 제목이 ‘모순’인지 알 수 있었고 충격이었던 포인트였습니다.
‘헤어진 다음날’이라는 노래는 ‘안진진’의 말처럼 그녀의 노래가 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잘 견디었음으로. 하지만 ‘김장우’의 노래는 되었겠지. 책에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서술되지는 않았지만 꽤 슬퍼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김장우에게도 안진진은 특별한 사랑이었을 테니까요..
책을 다 읽고 나서 우연히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일 년’이라는’ 노래를 듣게 됐습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안진진에게 ‘특별한 사랑’은 감당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을지 몰라도, 추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은 으레 그렇게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2. 책 속에서 수집한 문장
“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무엇, 부딪쳐 깨지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강렬한 무엇. 그 ‘무엇’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힘이 사랑이라면,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손을 잡았다.”
- 결과적으로만 보면 김장우의 손을 잡았지만, ‘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다는 대목에서 이미 ‘안진진’은 ‘나영규’를 선택할 것이라는 게 보이는 대사. 사랑을 묘사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사랑이 아닌 현실을 선택할 그녀가 더 부각된다.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 마침내 ‘김장우’와 ‘나영규’ 사이에서 고민하던 ‘안진진’이 결단을 내리는 대목이다.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 즉, 낭만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김장우’가 아니라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 곧 ‘나영규’를 택하겠다고 하는 이 대사가 지독히도 현실적이어서 ‘모순’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낭만적이어야 할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특별하지 않은 현실’을 택하는 것이 모순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검증된, 많은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걸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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